“회장? 사업가?” 학창시절 이재용이 학창시절 노트에 기록한 ‘아버지 직업’의 정체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손자이자 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 회장이 된 이재용 회장은 삼성가의 손자답게 뛰어난 학력을 갖고 있다.


경기초등학교, 청운중학교,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학창시절 항상 좋은 성적을 받았던 고교 담임선생님은 “재용이는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도 잘 다니는 평범한 아이로 기억한다.
친구들 만나는 걸 좋아해서 집에 자주 초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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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재용이는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동창회를 통해 알아왔지만 늘 얌전하고 조용했다.
죄송합니다

재벌 자랑을 하지 않고 사람을 좋아하고 잘 지내서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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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병철 총장이 “조기 교양 전공인 경영학을 공부해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권유해 동양사학과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외국인 사촌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서울대 사학과에 다니는 것과 인연이 있는 듯하다.

이재용의 부모님 이건희와 홍라희의 양육법에 따르면 일반 재벌 사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이재용은 평범한 학교 생활을 했다.


아버지의 직업을 입력한 교과서에 ‘사무원’으로 아버지의 직업을 입력한 사실이 밝혀져 큰 이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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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아버지와 함께 저녁을 먹은 이재용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누구의 험담도 하지 않으려는 모범생’의 이미지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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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당시 서울대 인문계약학과 분위기는 대체로 이랬는데, 그가 졸업한 동양사학과는 특히 그 움직임이 유명했다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 유학 온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교수진 자체가 급진주의 성향이 강했다.

이재용 씨도 같은 부서 감독관과 함께 시위에 참석해 최루탄을 맛본 뒤 전선 진입 거부 투쟁에 동참했다.

당시 대학생들에게는 낯설지 않았지만, 재벌 3세의 이런 행보는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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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들과의 나들이나 MT도 빠지지 않고 다양한 토론과 토론에 참여했다고 한다.

학창시절 골프와 승마에 소질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한동안 승마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국제 대회에서 입상한 바 있다고 한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서울대 재학 중 15명 안팎으로 구성된 승마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그는 여전히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즐긴다고 합니다.

그는 경호원이나 단체 관계자에게 말을 걸지 않고 평상복 차림으로 삼겹살 소주를 즐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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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아는 한 지인은 “고깃집에서 사람들이 나를 알아차려도 잘 의식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얼굴이 알려지니까 사람들이 안 보이는 구석자리를 찾아서 벽에 등을 대고 앉는다”고 자신을 말했다.

또 “재용이는 바쁘지 않으면 항상 친구 부모님 장례식에 참석한다.
어릴 때부터 조심스러워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매우 꺼려했고 사람들과 거리를 둘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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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은 평소 편하게 동거하던 학교 선배 기자에게 술자리에서 술자리에서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았지만, 선배는 자신의 의도와 다른 기사를 보냈다.

그때부터 크게 실망한 이재용은 스스로 언론을 피했다.

또 한번은 일본 전자회사 간부와 같이 있었는데 파파라치들이 술집 밖에서 난동을 피우며 거액을 요구해 부끄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