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향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어머니를 인터뷰하기로 되어 있었다.
가는 길에 가방에서 읽은 책을 꺼내 자리에 놓고 가방을 선반에 올려 놓았다.
서울터미널을 출발하려고 하는데 이미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버스 안은 맛있는 고향 사투리 “자, 긍케이, ..당케”로 가득 찼다.
훈훈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례적이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고향은 친근하면서도 낯선 곳, 가보고 싶고 가고 싶은 곳, 짧게 머물면 좋지만 오래 머물면 낯설은 곳이 되어 버렸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키를 높이려는 듯 줄지어 선 건물들이 창문을 넘어갔다.
태양이 빛나고 있어서 나는 창문 커튼을 쳤다.
헤드폰을 귀에 꽂고 조성진의 피아노 곡을 들으며 아까 꺼낸 책을 펼쳤다.
사면 끝이 있습니다.
손자 최규화가 쓴 29살 김두리 할머니의 구전 인생담을 담은 책이다.
90년 전 포항 사투리 김두리 할머니의 말을 번역한 것이라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읽어보니 사투리여서 더 생생했다.
나는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가 멈췄을 때 잠에서 깼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출발했습니다.
커튼을 걷다 창밖으로 산 중턱에 자리잡은 집의 풍경이 보였다.
“거기에 누가 살까? 밤에 무섭지 않을까요? 물은 잘 나올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걱정이 됐다.
어머니가 인터뷰를 거부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머니의 자서전을 쓴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인터뷰도 안 해주실까봐 손을 흔들며 “그럼 어떡할 건데? 어머니의 자서전을 쓸 것입니다.
아직 어머니께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든 효과가 있다면 걱정은 제쳐두겠습니다.
동네에서 형을 만나 택시를 타고 고향으로 갔다.
일산에 사는 형이 오늘 아침 일찍 내려와 시내에서 친구들을 만났다고 한다.
나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형과 함께 고향 마당으로 들어갔다.
둘째, 셋째 언니들과 먼저 와서 엄마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차려준 엄마가 문을 열고 반겨주었다.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나를 안아 주셨다.
둘째 누나는 어머니에게 “막내아들만 안아주지 말고 큰아들도 안아줘”라고 말했다.
엄마는 웃었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어머니!
막내가 어머니를 면담하러 내려와 자서전을 쓴다고 했다”고 둘째 누나가 말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쓰는 거죠?” 어머니가 말했다.
“엄마가 하고 싶은 말만 하면 돼.” 그렇게 말했지만 별로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엄마, 내일 밤부터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아 알겠다.
밥 많이 먹어.” 엄마가 말했다.
다음날 아침 남동생과 여동생은 매화나무 가지치기를 하러 밭으로 나갔습니다.
오랜만에 누나와 남동생
밭에 갔다 밭에 매화나무에 매화꽃이 너무 예뻤다.
가지치기는 매화를 찍기 위해 뒷전이었다.
나는 일하고 사진을 찍고 가져온 과일과 커피를 마셨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습니다.